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조화’와 ‘화합’을 미덕으로 여겨온 집단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조직 내 질서를 중시하며, 개인보다 전체의 이익을 강조하는 문화는 그 나름의 장점도 많았습니다. 한국이 빠른 시간 내에 경제 성장을 이룬 데에는 이러한 집단주의 문화가 큰 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문화는 동시에 ‘튀는 사람’, ‘다른 사람’을 배제하거나 눈치 보게 만드는 부작용도 함께 안고 있습니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하게 보이고, 눈에 띄는 스타일이나 의견은 ‘문제적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적지 않죠. 누군가가 유난히 창의적이거나 독특한 생각을 내면 “쟤 왜 저래?”라는 반응이 먼저 돌아오는 사회.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무난함’이라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게 됩니다.
‘개성’보다 ‘평균’, ‘질문’보다 ‘순응’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살아가는 현실은 단지 사회 문제를 넘어, 개인의 자존감과 창의성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튀지 말라는 메시지가 너무나 강하게 스며 있는 곳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오늘은 ‘튀면 안 된다’는 공기,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 풍경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평균’이 되어야만 살아남는 분위기
“그냥 조용히 있어라”, “나대지 마라”, “눈에 띄면 좋을 게 없다.”
우리는 이런 말을 성장 과정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특히 학교나 군대, 회사 등 한국의 다양한 조직 문화에서는 개인의 창의성과 표현보다 조직의 일체감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지만, 실제로는 자율성과 다양성을 억누르는 구조가 되기도 합니다. 유독 한국에서는 ‘눈에 띄는 사람’이 곧 ‘튀는 사람’으로 해석되며, 이는 곧 조직 내 위험요소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극적으로는 무시하거나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적극적으로는 따돌림이나 불이익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죠.
특히 아이들이 성장하는 학교 현장에서도 다름을 포용하는 문화가 약한 현실은 많은 문제를 낳습니다. 예를 들어, 옷차림이나 말투, 취미가 조금만 독특해도 ‘왕따’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발표 시간에 자기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한 아이가 ‘유난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평균에 가까운 존재’가 가장 안전하다는 무언의 룰은, 결국 사람들을 비슷하게 만들고 창의적인 가능성을 자르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의에서 다르게 생각하면 ‘까다로운 사람’, 유니크한 스타일을 하면 ‘TPO를 모르는 사람’, 자기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기보다는 교정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경향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다름’을 포용하고 있을까?
다양성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다양성보다는 ‘통일성’과 ‘일관성’을 미덕으로 교육받아 온 사회입니다. 물론 이런 집단주의는 위기 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해 왔지만,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다층화된 지금, 과거의 집단주의적 기준은 점점 ‘개인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과제는 ‘공동체 안에서의 다양성 존중’입니다. 함께 살아가되, 같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튄다고 해서 이상한 것이 아니며, 다름이 위험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시선과 스타일, 생각들이 모일 때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조직은 더 유연해지며, 사람은 더 인간다워질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젊은 세대는 이 ‘튀지 말라’는 사회 분위기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SNS를 통해 자기 색깔을 찾고, 조직보다 프리랜서나 독립적인 커리어를 선택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의 반영이기도 하죠. 하지만 동시에 ‘튀지 않기 위해’ 여전히 감정을 숨기고, 옷차림을 보수적으로 고르고, 나의 개성을 조용히 지워내는 현실은 아직도 무겁게 존재합니다.
조화는 같음이 아니라, 다름 속의 존중
조화란 모두가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화란 각자의 색이 살아 있으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균형입니다.
‘튀지 마’라는 말은 이제 조금은 내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름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니까요.
‘다르다’는 것은 문제도, 틀림도 아닙니다.
다양한 색이 섞여야 진짜 아름다움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이제는 조금씩 ‘무난함의 갑옷’을 벗고, 자신의 색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삶은 평균값이 아닙니다.
당신의 색이, 당신답게 빛나기를 응원합니다.